'에세이'에 해당되는 글 2건

  1. * 17살, 그 해 여름 - 7
  2. * 17살, 그 해 여름 - 6

  얼마지 않아 반이 여자친구 생겼다는 소문이 학원에 퍼졌다. 그리고 누가 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반을 좋아했었다는 소문또한 자잘하게 퍼져나가고있었다. 어떤 친구들은 '그럼, 반의 여자친구가 너야?'라면서 나에게 물어보았지만 오히려 내가 되려 물어보고싶었다. 도대체 그런 소문들은 어디서 듣고오는 것이냐고.

  '정말 미안한데, 나 좋아하는 사람이있어.'

  반의 말이 떠올랐다. 어쩌면 반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겠지. 반도 누군가를 보고싶고 그리워하고 좋아한다는 일로 하루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 지도 모르고 시간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처럼 자기 전 거울앞에 서서 자신의 외모를 살펴보면서 그 여자아이 옆에 서있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웃었을지도 모르겠다. 넓직한 가슴을 가지고 있던 반이었지만 그 여자아이에 대한 사랑이 차고 넘쳐 나처럼 가슴이 터질것처럼 아팠을지, 그것도 잘은 모르겠다. 하지만 연결고리가 전혀 없을 것만같던 반과 나는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마음을 가슴에 품고 지낸 17살짜리 아이들이었다는 점에서 어쩌면 연결되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씁쓸했다.

  '나도 너와 같은 마음으로 널 좋아했을 뿐이야. 너가 그 아이를 좋아했던 것처럼.'

  수학 시간, 여지없이 반의 등만 바라보며 나는 속으로 외쳤다. 나도 사랑을 했다고. 같은 마음으로 너를 좋아했다고.

 

  짝사랑이 무서운 이유는 혼자서 만들어낸 공상과 상상이 너무나도 달콤해서이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에 내가 반의 곁에 서게 된다면..이라는 생각으로 하루에도 수십번씩 달콤한 상상에 빠져있었던 터라 현실로 돌아오기가 너무나도 힘들었다. 상상 속에서는 그토록 행복하고 아름다웠던 나와 반은 현실세계에는 안타깝게도 존재하지 못했다.

  반대로 짝사랑이 가벼운 이유는 추억이 없어서 일 것이다. 막상 반을 좋아하고 하루에도 수십번씩 입을 맞추는 상상을 했었지만 실제로 그 아이와 나 사이에서 일어난 일이라고는 수학문제를 물어보거나 버스를 같이 타는 시시콜콜한 것들이었으니 말이다. 막상 반을 지워내기로 마음 먹었을 때 조차 나 스스로에게 '그런데, 지워낼 것이 그렇게 많았나?'하고 자문하게 될 정도로 나와 그 아이 사이에는 특별한 이벤트가 없었다.

  누가 물어보아도 이건 사랑이었다고 당당하게 말할수있던 반이지만 우습게도 너무나도 쉽게 지워지고 있었다. 그 해 그 더운 여름이 지상에 있는 모든것을 녹일 기세로 햇볕을 쏘아 대더니 결국엔 내 사랑까지도 쉽게 녹여버렸나보다.

 

 

  한 달이나 지난 후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반의 여자친구는 바로 수였다. 평범하고 모범생이였던, 결코 튀는 아이라고는 할 수 없던 반과는 달리 수는 근처 학교 남학생들 사이에서는 꽤나 인기있던 여학생이였던 모양이다. '반의 여자친구'는 아이들의 관심대상이 아니었지만 '수의 남자친구'는 아이들의 관심대상에 올랐다. 캐내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달라붙어 수의 남자친구가 어느학교 누구인지를 알아내고 그들이 어떻게 만났는지를 알아내는 일은 너무나도 쉬운 일이었을 것이다.

  들은 바로는 수가 먼저 반을 찾았다고 한다. 자기 친구에게 마음에 드는 남학생이 있으니 소개팅을 해달라며 졸랐다고 한다. 극성스러운 수의 친구들이 반의 학교 앞에서 진을 치고 앉아있다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반을 수에게 데려간것은 안봐도 불보듯 뻔했다. 처음에 반은 수를 싫어했다고 한다. 제멋데로이고 겉멋만 들어보이는 수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다시는 이런식으로 사람을 불쾌하게 하지 말라며 화를 냈다고 한다. 그 뒤로는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자세히는 모르지만 결과는 그 둘이 지금 연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 날 반을 바라보며 웃던 수의 표정이 떠올랐다. 어쩌면 그 때 수도 나와 같은 마음이 되어버린걸까. 결국 연결고리로 얽혀진 사람은 나와 반, 단 둘이 아니라 나와 반과 수였다. 아니 어쩌면 수와 반의 연결고리에 내가 끼어든 것일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반과 나 둘 중 하나를 잃게 된다면 누굴 택할 거야?'

  '둘 중 하나가 꼭 죽어야되. 그럼 누가 죽어야 할까?'

  왜 그렇게 유치한 질문을 했었나 세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수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나에게 그런 질문을 던지면서 수는 도대체 무슨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그리고 내가 수를 버리겠다고 말했을 때, 그 아이의 심정은 어땠을까. 나는 마음이 복잡했다.

 

 

 

  - 여보세요?

  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야."

  - 응, 알고있어. 오랜만이네? 무슨일이야?

  "다 알고있어, 나. 오늘 이야기 다 들었어."

  나는 말을 마치고 침을 꼴깍 삼켰다. 수는 말이 없었다. 어색하기 짝이없는 침묵이었다.

  "저번에 너가 물어봤던거있잖아, 그거 다시한번 물어봐줄래?"

  - 무슨 말이야?

  "너와 반 중 누구를 택할거냐는 질문말야. 다시한번 해줘."

  - ......

  "왜 말이없어?"

  - 너한테는 정말 미안해.

  "있잖아. 나 그 질문에 다시 대답하고 싶어. 있잖아, 솔직하게 말할게. 난 거짓말같은건 잘 못하니까말야. 만약에 너와 반 둘 중 하나를 잃어야 한다면, 나는 그냥 너네 둘 다 보내줄래. 난 더 이상 너와 함께 있는 것도, 반과 함께 있는 것도 함께한다라는 것에 의미를 못느끼겠다."

  - 미안해.

  나는 곧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미안하다고 말하는 수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렸지만 더 이상 이야기를 하다가는 내가 너무 불쌍해 질것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결되어 있는 세 사람과 선택받은 한 사람의 이야기. 결국 떨어져 나간 쪽은 나니까 말이다.

 

 

  그 해 여름은 너무나도 더웠다. 반이 추운 겨울에 나의 사랑고백을 받았다면 아니, 그 해 여름이 조금만이라도 더 덥지 않았더라면, 그 아인 아마 '좋아'라고 말해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해 여름 나는 너무나도 성급했다. 만약 내가 반을 조금만이라도 덜 사랑했다면, 그래서 수가 반을 보며 웃고있던 그 모습을 보며 나와 같은 마음으로 웃고있다는 것을 미리 알았다면. 그랬다면 내 가슴은 아프지 않았을텐데.

  그리고 그 해 여름, 눈부시게 빛나던 태양보다도 더 아름답게 수는 빛났다. 반도, 나도, 그 아이의 눈부심에 눈이 멀어버렸으니까.

  그 해 여름은 눈부시게 가슴시렸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 처음으로 수능을 보았을 때, 그 추운 겨울 나는 반과 수가 헤어졌다는 소문을 전해 들었다. 그 둘은 꽤나 오랫동안 서로 연인이라는 이름 아래 함께 지냈다. 그리고 그 소문을 들은지 얼마되지 않아 수가 나를 찾아왔다.

  나와 수는 근처 카페에 들어갔다.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자주 들렸던 조금 지저분하긴 했지만 사람도 없고 체리콕이 기가막히게 맛있던 허름한 카페였다. 2년 만에 만난 수는 얄밉게도 더 예뻐져있었다. 어린 애처럼 귀엽게 예쁘던 수는 이제 20살의 문턱을 넘을랑 말랑하는 아가씨처럼 변해있었다. 여전히 키는 조그맣고 말랐지만 뭔가 여성스러운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예전의 수같았으면 너무나 오랜만이라며 내 손을 잡고 방방 뛰었을 텐데 내 눈앞에 있던 수는 그저 조용히 그동안 어떻게 지냈냐며 나의 안부를 물었다.

  나는 그저 잘 지냈다고만 말했다. 솔직히 2년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가에 대해 수에게 다 말하기에는 시간도 부족했고 내 이야기를 그 아이에게 그렇게 하고싶지도 않았다. 수는 씁쓸하게 웃으면서 나에게 반과 헤어졌다는 이야기를 어렵게 꺼냈다.

  나는 알고있다고만 말했다. 속으로는 '넌 왜 내가 다 알고난 뒤에서야 니 입으로 진실을 말해주니?'라면서 따지고싶었지만 오랜만에 나를 찾아온 수가 무슨 말을 하기위해 온 것일까 궁금해서 따져묻지는 않았다. 나는 단지 하고싶은 말이 있으면 다 하라고 수에게 말했다.

  수는 그 아이 앞에 놓여있는 체리콕 잔만 초조하게 만졌다. 뭔가 수가 지금 중학생들이 좋아할 법한 이 빨간 쥬스를 마시고 있다는 것이 굉장히 어색하게 느껴졌다. 지금 그 아이의 차림새라면 비엔나커피나 아메리카노를 홀짝이며 마셔야 더 어울리지는 않을까,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수가 입을 열었다.

  "반이 말야.."

  수의 목소리를 통해 '반'이라는 이름을 전해 듣자 기분이 묘했다. 나와 이 아이는 반을 사랑한거겠지. 같은 마음으로.

  "반이 나 만나고 많이 변했어."

  나는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 아이를 바라보았다.

  "음.."

  수는 빨대에 입을 가져가 쥬스를 조금 맛보았다.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던 애였는데.. 내가 다 망쳐놓은 것같은 기분이 들어."

  "무슨 소리를 하고있는건지 전혀 모르겠어."

  "솔직하게 말하자면 반이 정말 좋아했어, 나."

  "그런 얘긴 하지말자."

  "응. 어쨌거나 나는 반이랑 함께 있는 시간이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반이랑 매일매일 만났어. 정말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같이 있었어."

  조금씩 약이 올랐다. 왜 이제와서 이런이야기를 나에게 하는지 수의 마음을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수능도 끝나고 막상 대학교 지원을 하려니까, 갈 수 있는 곳이 한군데도 없더라. 공부를 안했으니까 당연한 결과지. 솔직히 나는 전문대나 갈 생각이었으니 별로 아쉬운건 없어. 문제는 반인데.."

  반은 분명 공부를 잘했다. 왠만한 서울에 있는 학교는 어디든 지원하고도 남을 성적이었다.

  "학교에 떨어졌거든. 재수할거냐고 물었더니 대답도 없고. 앞으로 공부할 생각도 없는지, 재수학원에 등록은 안하고 아르바이트만 해. 요즘엔 요 앞 사거리 핸드폰 가게에서 알바한다고 하더라."

  "아.. 그래."

  막 재수를 결심했던 나는 혹시 반과 같은 재수학원을 다니게 되면 좋겠다는 쓸데없는 생각을 잠시 했다.

  "그래서 그냥 우리 헤어지기로 했어. 좀 더 나은 모습으로 만나자고 약속하면서 헤어졌어."

  "그랬구나."

  왠지모르게 수가 어른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만약 수였었더라도 반과 헤어졌을까.

  "그런데.."

  "응?"

  "반이랑 헤어지고나서 알게된게 하나 있어."

  "뭔데?"

  "나 말야."

  "응. 말해."

  나는 어느덧 수와 다시 예전처럼 허물없이 이야기하고 있던 내 모습에 깜짝놀랐다. 수가 말을 하면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듣기만 했던 중학교 2학년때의 그 모습처럼, 우린 예전처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수는 잠시 입술을 깨물며 말을 멈췄다. 그 아이가 잡고 있는 투명한 유리컵은 너무나도 세게 쥐어 곧 깨질것만 같았다.

  "나, 4주래. 임신했어."

 

  수는 막상 생각나는 사람이 나뿐이라고 털어놓았다. 반이에게는 비밀로 할 것이고 아이는 지울거라고 말했다. 그러니 병원에 같이 가서 내가 보호자라고 말한 뒤 수술 동의서에 서명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어떻게 해야할지를 몰라 입만 뻥긋 댔다. 수는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뱃속에서 자라는 아이가 너무 불쌍하다고 자기는 길에서 차에 치여 죽은 강아지나 고양이만 봐도 불쌍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어떻게 사람을 죽여야 할 지 모르겠다며 말하곤 그대로 엎드려버렸다. 수의 어깨가 점점 심하게 떨리는 것같았다.

  "알았어.. 같이 가자."

  나는 수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 아이의 손은 따뜻했다. 엄마의 손 같이 따뜻했다.

 

  19살에 다시 만난 수는 차가운 침대 위에 누워서 나에게 이렇게 이야기 했다.

  "너랑 같이 보냈던 중학교 2학년, 그 1년이 내 인생에서 제일 재미없었어." 나는 그 말에 조용히 웃어주었고, 그 아이는

  "그래도 나한테 기회를 준다면, 다시 그 때로 돌아가고싶어.."라고 이야기하며 눈물을 흘렸다.  

  나는 수술 동의서에 사인을 했고 수술 중 수가 죽게되거나 불구가 된다면 모두 내가 책임을 지겠노라고 서명했다. 그게 내가 수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전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같은 남자를 사랑했던 여자로써 수에게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마음이었다.

 

  수는 병원에서 반나절이나 잠들어 있었다. 나는 수가 혹시나 죽은게 아닐까 가끔 코 밑에 손을 가져다 대며 숨을 쉬는지 확인해 보았다. 바싹 말라 가뭄들은 땅처럼 갈라진 수의 입술이 너무나도 불쌍해보였다. 내가 그토록 닮고싶어하던 아름답던 수의 모습은 다 어디로 가버린걸까. 

  수는 그 날 밤 퇴원했고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꾸미고서 집으로 들어갔다. 배가 찢어질 듯 아프고 하혈을 하면서도 엄마와 고모에게는 생리가 갑자기 시작했다고 말을 둘러대며 피곤하지 않은 척 쾌활하게 웃고있을 수의 모습을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날 것같았다. 하지만 19살에 엄마가 될 수 없었던 수의 선택이 그것이 었으므로 나는 그저 푹쉬라는 말 밖에 해줄수가 없었다.

 

 

  몇 주 뒤 대학교 원서접수 결과가 발표되었다. 나는 보기좋게 미끄러졌다. 엄마와 아빠는 한숨을 푹푹 쉬면서 그렇게 공부를 하니 대학에 떨어진것아니냐며 나를 혼냈다. 나는 조용히 무릎을 꿇고 앉아 엄마와 아빠의 잔소리를 듣고만 있었다. 두 분이 교대로 하는 연설을 모두 듣고 나는 혼자 재수학원에 등록하기 위해 집을 나왔다.

  그 사거리 앞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기 위해 서 있을 때, 나는 문득 반이 이 근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는 것이 생각났다. 근처 핸드폰 판매점 앞에서 나는 발걸음이 멈췄다. 커다란 검정 코트를 입고 목도리를 둘둘 만체 서있던 반은 사람들이 지나갈 때마다 새로나온 핸드폰을 싸게 드린다며 사람들에게 열심히 떠들고있었다. 귀까지 새빨갛게 얼을 정도로 추운 날씨에 하루종일 밖에 서서 이렇게 사람들에게 떠들어대는 반은 이제 예전에 내가 알던 반이 아닌것같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한걸음 더 반에게로 내딛었다.

  "오랜만이야. 나 기억해?"

  "아, 너."

  반은 손을 호호 불면서 녹이다가 나를 보고는 깜짝 놀란듯이 눈이 동그래졌다. 그리고는 환하게 웃어주었다. 너무 오랜만이라고 그동안 잘 지냈냐는 인사까지 하면서 악수를 청했다.

  "응. 뭐 그렇지.. 반이 너 대학은?"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물었다.

  "난 이번에 안가."

  "나도야. 재수생이지, 뭐."

  "이번에도 같은 학원 다니게 되려나?"

  반은 자기가 말하고도 멋쩍었는지 뒷통수를 긁으며 웃었다. 큰 키에 넓은 어깨, 까만 얼굴은 여전히 곰같은 이미지를 풍겼다.

  "아, 근데 너 핸드폰은 필요없냐?"

  반은 우스갯소리까지 하면서 크게 웃었고 나는 그저 따라 웃었다.

  "반."

  "응?"

  "아니야. 그냥 잘 지내라구. 난 가봐야겠다."

  "그래, 잘 가구. 핸드폰 살일있으면 꼭 여기로 와. 내가 많이 깎아줄게."

  "알겠어. 그럼 난 간다."

  나는 뒤돌아섰다. 가슴 속 무언가가 흔들리는 것같았다. 뒤로는 반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렸다. 핸드폰을 싸게 팔고있다고, 한번 보고가라고 듣지도 않는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외쳐대는 그의 목소리가 마치 울음소리처럼 들렸다.

 

  누군가가 첫사랑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없이 반이라고 말할 것이다. 비록 그 아이와 내가 나눈 연결고리는 제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고, 그저 '임신한 여자' 혹은 '임신한 친구'가 반과 나의 유일한 연결고리였지만 나는 반을 사랑했다. 앞으로 수십년이 더 흐른다고 해도 나는 그 해 여름, 반을 사랑했다.

  그렇게 반을 사랑했다는 2년 전 기억이 떠오르자 나는 추운 겨울 날 눈이 화끈거리도록 뜨거워졌다. 하지만 울지는 않았다. 나는 첫사랑에는 실패했지만 두번째사랑은 성공할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으니 언젠가는 행복해 질것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재수학원에 등록하러 가던 그 날, 그 길에서 나는 반에게서 자꾸만 멀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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