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세요」

그의 차가운 음성이 귓가에 멤돌았다.

전화하면 안되는걸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그의 전화번호를 눌러버렸다.

푸석하게 말라버린 그의 목소리에선 감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난 한참을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체 수화기를 귀에 갖다 대고 있었다.

「…하나…? 하나짱이야?」

그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나는 위험을 느낀 사람처럼 손을 떨었다. 괜히 전화했다 싶었다. 역시 전화하는게 아니었는데…….

괜히 그의 목소리를 듣고 더 마음이 아파졌다.

「하나짱이지? 그렇지? 하나짱…돌아와. 나 당신 없으면 안되는거 알잖아. 당신도 나 보고싶지, 그렇지?」

그의 목소리가 점점 울음으로 가득 차고 있었다.

난 끊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수화기를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그에게 미안하지만, 끊고 싶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조금이라도 더 그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하지만 난 이내 수화기를 내려놓을 수 밖에 없었다.

「하나…돌아와. 않 돌아오면 나, 나 죽어버릴거야.

  정말이야. 당신 없이는 도저히 못 살겠어. 그러니까…그러니까…제발 돌아와.」

난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버렸다.

그를 매정하게 버린 것이 너무 미안해졌다. 그렇게 따뜻하고 정 많던 그가 이렇게 변해버릴 줄이야…….

난 그 자리에 앉아 목 놓아 울었다. 눈물이 앞을 가려 눈 앞이 아른해졌다.

심장이 아팠다. 너무 아파서 도려내고 싶을 만큼 너무 아팠다.

그 해 여름 -1-

"하나짱. 가서 점심 좀 사와."

"네?"

"못 들었어? 점심 좀 사오라고."

"아, 네."

"하나짱! 오면서 커피도 사와."

"네. 알겠습니다."

이번에 새로 파견된 회사다.

여기 저기에서 평판도 괜찮고, 유능한 인재들만 뽑는다고 해서 조금 기대했는데…….

혹시나가 역시나였다. 파견 사원은 사원으로 취급도 않해주는 쓰레기 회사.

파견 사원이라고 다른 사원들의 시중이나 들어야한다니…오, 어머니! 제가 이렇게 살아요.

그것도 더 억울한건 같은 날에 입사한 사원임에도 불구하고 저 년은 날 이렇게 부려먹고 있다.

어디 얼마나 잘하나 두고 보자. 도시락에다가 설사약을 넣어버려?!

이런 저런 생각과 더불어 나에게 심부름을 시킨 사원을 씹어주고 있다보니

벌써 도시락 가게에 도착했다.

나는 가게에서 제일 싼 도시락을 두개 사서 스타벅스로 향했다.

그 년은 또 생긴거랑 다르게 비싼 것만 먹어댄다. 그러니까 생긴게 그 모양이지.

모름지기 사람은 마음을 곱게 써야한다니까. 생긴게 곱지 못하면 마음이라도 고와야지.

스타벅스에 도착한 나는 에스프레소 한잔을 사서 밖으로 나왔다.

봄이라서 그런지 바람이 잔잔하니 얼굴을 살짝 스쳐 지나갔다. 부드러운 바람이었다.

바람이 지나가자 벚꽃 잎 하나가 눈 앞을 스쳐 지나갔다. 봄이라는 걸 분명하게 알려주고 있었다.

도쿄의 오후는 바쁘다.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점심을 먹기 위해 기다리는 줄로 바닥이 않 보일 지경이니까.

너무나 많은 사람들로 인해 걷기 조차도 힘겨울 지경에 이르렀다.

나는 커피와 도시락을 조심스럽게 들고 사람들 사이를 지나갔다.

그때, 어깨에 강한 충격을 느끼고 나는 넘어졌다.

"에이씨, 누구야?"

"아, 미안. 괜찮아요?"

나는 나와 부딪힌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 사람은 미안한 듯한 얼굴로 나에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그 사람의 주위에 무언의 오오라가 뿜어져 나왔다. 딱 보기에도 연예인 같았다.

앗싸, 땡잡았다.

얼굴을 약간 가려서 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꾀나 잘 생긴 얼굴 같았다.

뭐, 어차피 얼굴이 다 보여도 누군지도 못 알아볼게 뻔한데 뭘…….

나는 그 사람이 내밀었던 손을 무시하고 일어나서 옷을 탁탁 털었다.

그 사람은 내밀었던 손이 무안하지 않게 재빨리 거둬들였다. 약간 표정이 일그러진 것 같았다.

"괜찮아요? 진짜 미안."

"아, 뭐 괜찮아요."

"다행이네."

"응? 아! 내 도시락, 커피!"

난 내 주위에 흗어져버린 도시락과 커피를 바라보며 경악했다.

그리고 그 사람을 힘껏 째려보았다.

흠칫, 내 눈초리에 당황한 그 사람은 헛기침을 큼큼 하면서 미안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아, 다시 사러 가야해? 도시락 가게 문 닫았을 텐데…….

"아, 미안."

"……."

"저기, 변상할게요. 진짜 미안해요."

"……."

"……."

"……."

"저기……."

"에이씨, 짜증나!"

"…한국 분이세요?"

"아, 네. 뭐 그렇죠."

기분이 나빠진 나는 그 사람의 질문에 틱틱거리며 받아쳤다.

그 사람은 약간 당황한 듯한 미소를 보내면서 땀을 삐질 흘리고 있었다.

그게 그 사람과의 이상한 인연이 될 줄은 꿈에도 모른 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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