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박용우라는 배우를 참 좋아한다. 그에게 눈길을 돌렸던 첫 영화는 '혈의 누'였다. 대사를 맛깔 나게 치는 그리고 아주 능숙하고 천연덕 스러운 그의 연기에 매번 탄복에 탄복을 금치 않는달까,
하지만 김상경이라는 배우가 연기한 류정호라는 남자, 어쩐지 세상에 오래 남아 있을 것 같은 인물은 못 된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매우 독특한 인물이긴 하지만 이러한 인물이 실제 세상을 살아간다면 누군가에게 벌써 죽임을 당했거나 여러차례 누명과 참고인으로 불려간 컴퓨터상의 흔적들 때문에 쉽사리 세상을 살아가지는 못 했을 것이라고. 영화 속의 그도 결국은 서른둘이라는 젊은 나이로 세상을 등지고 만다.
영화의 내용은 매우 잔인하고 슬픈 여아유괴 감금 시체유기등 질 나쁜 범죄 이야기지만
이야기의 초점은 그 것이 아니다.
소. 통.
이야기 하려는 주 내용은 소통이다.
우리는 얼마나 더 자주 이웃하고 있는 이와 소통하는 가, 가족들끼리의 단절과 이혼 그리고 뿔뿔이 흩어져 가족이라 부를 수 없는 타인보다 못 한 존재의 피를 나눈 형제들,
인간과 인간 사이의 소통이라는 그릇은 감정을 담아 진실되게 나눠야 하기 때문에 비누방울처럼 얇고 위험하다.
어느 날, 류정호가 다니는 학급으로 어여쁜 처자 하나가 전학을 오게 된다. 그녀는 양딸이었고 새 아빠에게 시시때때로 성폭행을 당하고 있었다.
어린시절 교통사고 때문에 귀가 들리지 않는 류정호는 조용한 세상에서 그 사람의 행동을 보고 그 사람의 마음과 심리상태를 알 수 있는 기이한 능력을 얻게 되었다.
그러한 연유로 그녀를 보자마자 무언가 마음에 불쾌한 감정을 숨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사랑하는 그녀에게 고민을 털어 놓으라고 재촉한다. 급기야 그녀는 정호에게 새 아버지의 성폭행 사실을 알리고, 그 사실은 엿들은 학생들에 의해 일파만파로 커진다. 그리고 그녀의 자살,
들어주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감정의 소통이라는 것은 외피에 쌓여 있던 한 사람의 내면을 속 뒤집듯 훤히 까 뒤집어 내가 함께 공유하고 감당할 수 있을 때에만 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정호는 세상을 듣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을 뿐 그것과 소통하지 못 한 결과로 인하여 그녀를 도와주지 못 했고 잃었다. 그러한 죄책감은 평생을 그를 쫓아 다녔다.
말의 무게가 이토록 무겁고 감정의 무게가 이토록 무겁다는 사실을 영화를 보며 또 한번 곱씹어본다.
정호는 들리지 않는 세상에서 위탁온 수연의 마음을 진정으로 들으려고 애쓰고 그녀와의 소통에는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조금씩 정호의 마음의 세상이 소란스러워지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그는 죽음 직전에 자신의 눈을 보호함으로서 수연이에게 새 세상을 주었고 수연이는 정호의 눈과 정호의 마음으로 세상을 따뜻하게 덮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영화의 뼈대는 새아버지에게 성폭행 당하던 양딸이 새아버지의 아이를 낳고 그 충격으로 더러운 아버지의 손이 닿은 아일 물로 씻궈내겠다며 질식시키고 연이어 위탁가정에 내 보낸 자신의 유아원 아이들이 그 가정에서도 웃음을 찾지 못 하자, 독버섯을 먹이고 즐겁게 보살피다가 수 틀리면 너는 웃어야 돼! 천국으로 가렴!! 하며 죽인다는, 사이코틱한 이야기였지만 어쩐지 정호와 수연을 통한 소통에 관한 조금 슬프고 애뜻한 영화였던 것만 같아 그러한 범죄적인 내용은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참 잘 만들어진 영화라고는 못 하겠지만 무언가 남고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임에는 틀림이 없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